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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정지현 기자] 여경래 셰프가 “정신적 지주”였던 허인 사부와 재회했다

14일 오후 방송된 KBS 2TV ‘TV는 사랑을 싣고’에는 여경래가 출연했다.

이날 여경래는 “아버지가 중국인이시다. 그래서 동생과 중국인 학교에 다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가 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어머니께서 더 이상 공부를 못 시키겠다고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다. 그렇게 왕서방 아저씨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가족을 위해 17세 때 중국집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여경래는 “내 인생의 사부님인 허인 사부님을 찾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19세 전후로 동생과 같이 중식업계에서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분을 찾고자 프로그램에 의뢰하게 됐다. 롤모델로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는 분이다”라고 설명했다.

허인과의 첫 만남을 떠올린 여경래. 그는 “19세 때 한남동 유명 중식당에 취직했다. 거기서 거목 같은 분들을 만나 뵀다. 동생도 같이 받아 줘서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형제를 한 군데에 놓고 일을 시키는 곳이 없었다. 저희를 묵묵히 감싸주셨다. 형님 같고 아버님 같은 기둥 같은 존재였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여경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저도 기억이 많지 않다”며 “어릴 때 농사를 지었는데, 집이 되게 남루했지만 저희 가족은 단란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추수한 후 농작물을 시내에 팔고, 가족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아버지께서 저하고 어머니를 차에 태운 뒤, 농산물을 가지고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제가 차에 치이는 아빠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엄마에게 ‘아빠 죽었어’라고 한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안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고. 여경래는 “어머니는 농사로 생계를 이루기 어려워서 시내로 가 막걸리 장사를 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들은 MC 현주엽은 여경래의 어머니에 대해 “그 당시 형편이 어려운데도 지게꾼들 힘내라고 막걸리를 공짜로 주고, 배고픈 사람 있으면 빵을 그냥 나눠주셨다고 한다. 동네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신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TV는 사랑을 싣고’ 제작진은 허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했다. 여경래와 MC 김원희, 현주엽은 인천의 한 중식당에서 허인을 만났다. 오랜만에 재회한 여경래와 허인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허인은 “후두암에 걸렸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음식을 안 만든 지 몇 년 됐고, 지금은 아들이 이어가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허인은 여경래를 위해 직접 요리를 했다. 이 자리에는 여경래의 동생 여경옥도 함께했다. 사부의 요리를 처음 먹은 여경옥은 “어릴 때는 높으신 분이라 감히 음식 만드는 걸 구경 못했는데, 선배님이 만드신 음식을 먹으니 감개무량하다”며 감격했다.

허인은 여경래, 여경옥 형제를 받아준 것에 대해 “저도 집에서 맏이다. 14세 때 일을 처음 시작했는대, 그 사정을 알기 때문에 데리고 있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방송에 나오는 여경래, 여경옥 형제를 보며 “제자가 출세해서 방송에 나오니까 뿌듯했다. 주변에 내 제자라고 자랑했다”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여경래는 “일찍 찾지 못해 죄송하다. 좋은 계기가 돼서 많이 찾아뵙겠다. 늦었지만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셨으면 한다”고 전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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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AFP연합뉴스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브라질 슈퍼스타 네이마르(28·파리 생제르맹)가 ‘축구황제’ 호나우두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네이마르는 13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의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데 리마에서 열린 페루와의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남미예선 2차전에서 전반 28분 첫 골을 넣고는 ‘호나우두 세리머니’를 ‘시전’했다. 앞니로 아랫입술을 깨물어 ‘토끼이빨’을 만든 뒤 오른손 검지를 흔들었다. 호나우두가 전성기 시절 선보인 세리머니를 재현한 이유는 이 득점으로 호나우두와 브라질 대표팀 통산득점 동률(62골)을 이뤄서다. 미리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네이마르는 2-2 팽팽하던 후반 38분과 추가시간 4분 연속골을 넣으며 팀의 4대2 역전승을 이끌었다. 3번째 골을 넣고는 세 손가락을 흔들며 해트트릭을 자축했다.FX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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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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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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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날 62, 63, 64호골(103경기)을 한꺼번에 터뜨리면서 ‘호돈신’을 넘어 브라질 통산득점 2위로 올라섰다. 이제 그의 위에는 오직 펠레(77골)만이 버티고 있다. 남아메리카 국가 중에서 네이마르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은 현역선수는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72골)뿐이다.

네이마르는 경기 이후에도 ‘브라질의 옛 등번 9번’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개인 인스타그램에 호나우두와 자신의 세리머니 사진을 올린 뒤 “존경합니다, 페노메논”이라고 적었다. ‘페노메논’은 경이로운 사람이란 뜻으로, 호나우두의 애칭이다. 네이마르는 2010년 8월 10일 미국전에서 데뷔골을 넣은 지 10년여 만에 업적을 달성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스타뉴스 강민경 기자]로꼬 /사진=MBC ‘라디오스타’ 방송화면 캡처
‘라디오스타’ 로꼬가 자신의 탈모에 대해 언급했다.

14일 오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는 ‘힙로병사의 비밀’ 특집으로 꾸며져 박근형, 박휘순, 로꼬, 크러쉬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MC 김구라는 로꼬를 보고 “이 친구를 보니 문득 문득 기억이 난다. 삼겹살을 못 구웠지. 또 탈모가 있었지”라고 말했다.

로꼬는 “탈모도 속상한 게 있었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탈모를 고백했다. 이후에 대한민국 수많은 탈모인들이 ‘저렇게 빽빽한데 무슨 탈모냐’고 했다”라고 털어놨다.

로꼬는 “사실 방송 출연 전에 숍을 가면 비어 보이니까 채워준다. 오해하지 말라. 저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고, 똑같다. 같은 약 바르고, 같은 약 먹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의 머리를 문질러 묻어나온 흑채를 인증해 웃음을 안겼다.

[인터풋볼] 오종헌 기자=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리스 제임스가 덴마크와 경기에서 종료 휘슬이 울린 뒤 퇴장을 당했다.

잉글랜드는 15일 오전 3시 45분(한국시간) 잉글랜드 런던에 위치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UNL) 리그A 2조 4차전에서 덴마크에 0-1로 패했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덴마크에 추격을 허용하며 조 3위에 위치했다.

이날 홈팀 잉글랜드는 3-4-3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최전방에 래쉬포드, 케인, 마운트가 포진했고 좌우 측면에 나일스, 제임스가 위치했다. 중원에는 라이스, 필립스가 호흡을 맞췄고 3백은 매과이어, 코디, 워커가 구성했다. 골문은 픽포드가 지켰다.

이에 맞선 덴마크는 4-3-3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브레이스웨이트, 돌베리, 폴센이 3톱을 구축했고 호이비에르, 에릭센, 델라이니가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4백은 스코프, 크리스티안센, 키에르, 바스가 호흡을 맞췄다. 골문은 슈마이켈이 지켰다.

전반 중반 잉글랜드에 악재가 발생했다. 전반 31분 매과이어가 상대 역습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경고 누적 퇴장을 당했다. 곧바로 덴마크의 선제골이 터졌다. 전반 35분 델라이니가 워커에게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로 나선 에릭센이 이를 마무리했다.

이에 잉글랜드는 곧바로 나일스를 대신해 밍스를 투입하며 수비 안정화를 꾀했다. 전반을 0-1로 뒤진 채 마무리한 잉글랜드는 후반 들어 산초, 칼버트 르윈, 헨더슨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결국 득점에 성공하지 못하며 덴마크에 무릎을 꿇었다.

이날 잉글랜드는 전반 중반 매과이어의 퇴장이 뼈아팠다. 60분 가량 수적 열세에 시달렸다. 하지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직후 또 한 명이 퇴장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는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첫 선발 경기에서 레드 카드를 받으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받게 됐다.파워볼실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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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열병식서 공개한 군부대 명단에서
95년 쿠데타 모의했던 6군단만 빠져
고위 탈북자 “체제전복 시도한 부대, 역사에서 지우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 26일 당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기념해 백두산 기념권총을 수여한 후 권총을 치켜든 군 지휘관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군과 정보당국의 도움을 받아 얼굴이 식별된 군 지휘관의 이름을 표시했다. 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 26일 당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기념해 백두산 기념권총을 수여한 후 권총을 치켜든 군 지휘관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군과 정보당국의 도움을 받아 얼굴이 식별된 군 지휘관의 이름을 표시했다. 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이 최근 군단장급 지휘관을 대거 교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지난 10일 자정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한 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당일 오후 7시 녹화 방송했다. 방송에서 북한은 열병식에 참가한 부대들과 각급 부대와 지휘관을 소개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관할하는 전략군 사령관으로 새로 임명된 김정길 상장이 지난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관할하는 전략군 사령관으로 새로 임명된 김정길 상장이 지난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한 군 지휘관들의 면면을 보면 이은경 강반석혁명학원 원장(육군 소장) 등 일부를 제외하곤 2018년 열병식 때와 비교할 때 대부분 교체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관할하는 전략군 사령관(김락겸→김정길)도 바뀌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2016년 6월 화성-10(무수단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맨 왼쪽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사람은 김락겸 전 전략군 사령관. [중앙포토]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2016년 6월 화성-10(무수단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맨 왼쪽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사람은 김락겸 전 전략군 사령관. [중앙포토]
이날 북한이 공개한 육군 군단급 부대는 1~12군단과 평양방어군단 등 13개 군단 중 11개다. 북한은 이날 “서남 관문을 믿음직하게 지켜나가는 4군단, 군단장 박광주 상장”, “북부지대의 난공불락 요새 9군단, 송영근 중장”, “동쪽 관문의 10군단, 군단장 이용철 중장” 등의 방식으로 열병식에 부대가 등장할 때마다 상세히 소개했다.

이 가운데 6군단과 11군단은 빠졌다. 우선 11군단은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특수부대로, 북한이 유일하게 지휘관을 소개하지 않고 “만능 싸움꾼, 특수작전군”이라고 언급한 부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6군단과 관련해선 이를 추정할 수 있는 부대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이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호위부대(당중앙위 호위처, 호위국, 호위사령부)를 비롯해 군부대의 위치와 군단장 계급, 이름까지 세세히 밝힌 점을 고려하면 아예 6군단은 열병식에 참여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6군단은 1990년대 중반 발생한 ‘6군단 사건’ 이후 북한군 편제에서 빠졌다”며 “이후 북한이 12군단 등 새로운 군단을 창설하면서도 6군단이라는 이름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6군단 사건’은 1995년 당시 함경북도 청진에 사령부를 두고 있던 6군단에서 발생한 쿠데타 모의 사건이다. 당시 6군단 정치위원을 중심으로 하급부대 지휘관 및 행정기관 관계자 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전복하려는 쿠데타를 모의하다 사전에 발각됐다.

고위급 탈북자들에 따르면 당시 6군단 정치위원은 군단장(김영춘)을 배제한 채 국경 지역에서 외화벌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통해 ‘작전’ 세력을 확대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김영춘 당시 6군단장이 이를 눈치챘고, 군 보위사령부 등과 함께 이들을 진압했다.FX시티

이 사건 이후 김영춘은 그해 10월 총참모장에 오른 뒤, 인민무력부장, 국방위 부위원장 등을 지내는 등 2018년 8월 사망할 때까지 승승장구했다.

익명을 원한 탈북자는 “북한은 최고지도자를 향해 손가락질만 해도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다”며 “사건 발생 이후 관련자들의 친척들까지 처형하고, 군단을 해체한 뒤 25년이 지났지만, 체제를 전복하려 한 부대를 역사에서 지우려는 차원에서 6군단을 부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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